저는 우울함을 자주 먹구름에 비유하여 표현합니다. 뭔가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머리 위에 둥실-하고 떠있는, 잡히지도 않고 형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지요. 종종은 왜 우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애매하고 교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형태도 없고 애매한 녀석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합니다. 꼭 필요한 애증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왜 이 불편한 기분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 원망이 들때에는 ‘슬픔’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슬픔’이 왜 존재하는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먼저 편안한 옷(잠옷)으로 갈아입고,맥주/차 한잔을 들고 쇼파에 앉아서 디즈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을 시청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재밌기도 하지만 정말 유익한 두시간이라고 보장합니다(!) 그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일단 재밌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감정의 역할에 대해 창의적이게 잘 표현을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의 모교 UCSD에서 인지와 감정의 역할에 대해 연구를 하시는 심리학과 교수님 John Wixted, PhD의 자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새드니스 Sadness’ 라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그녀는 Riley라는 아이의 슬픈 감정입니다. 새드니스는 Riley의 경험과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아직 안보신 분들을 위해 내용을 스포일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았을때 우리 각자 안에 있는 ‘새드니스’는 우리를 잠시 바깥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을 줍니다. 또한 주변사람들로 부터 더 많은 관심과 소셜 서포트를 받을 기회를 만들어주고, 나아가서는 내가 다른사람들의 고통에 더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슬픈마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동의하시나요?오히려 우리를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건 아닌가 싶은데요.
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슬픈마음을 너무 오해하며 살아온 건 아닌가 싶어요. 슬픈감정은 떨쳐버리고 묻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을까요? 새드니스가 좀 억울할 것 같아서 오늘 그 오해를 좀 풀어보려고 합니다. 일단, 슬픈 감정은 위험하지 않습니다. 위험한 것과 불편한 것은 다르죠. 위험한 것은 피해야 하지만 불편한 것은 다루면서 공존할 수 있습니다. 잠시 불편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대부분 잘 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상황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불편한 상황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두번째, 슬픈감정은 약한 마음이 아닙니다. 만약 정말로 약한 사람들이 우울함을 느끼고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라면, 반대로 슈퍼멘탈을 가진 사람들은 슬픔을 느끼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진짜 단단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슬픔을 정상적인 현상이라 인식하고 느끼고 맞장떠서(?) 직시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는 눈물을 참지 않고 효율적으로 잘 우는 사람들이 진짜 멘탈’갑’이라 생각합니다. 세번째, 슬픔은 정당화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어떤 상황에서도 어떠한 이유로도 슬플 권한이 있습니다. 캔디같은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야!”라며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슬퍼야 할 것 처럼 이야기하지요. “너보다 힘든사람들도 많아. 너정도면 괜찮은거야”라며 야속한 위로(?)의 말들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나의 감정에 솔직해질 기회와 권한을 주지 않을 뿐더러 나의 감정에 죄책감을 느끼게 합니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고, 나는 지금 언제든 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슬픔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간혹 저의 클라이언트가 울먹이며 “이유없이 우울하다/슬프다”라고 하면 저는 그자리에서 그저 침묵을 지키고 생각해볼 시간을 줘보려고 합니다. 정말 이유가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는 이해를 하기를 포기하는 것일까요? 아마 그 감정이 앞서 얘기했듯이 먹구름 같은 애매한 존재이기 때문에 들여볼 생각을 안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제안을 하는 것은, 내 안의 슬픔을 오해하지 말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저 그자리에 있음을 알아채 주는 것입니다. 저번주 포스팅 (링크)에서도 걱정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한 마음수련의 단계로 소개를 했었지요? 이어서 우울한 마음도 단지 인정해주고 “나의 슬픔”이라고 따로 공간과 라벨을 마련해주면서 점점 나 자신에게서 분리를 시켜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먹구름은 내가 아니고, 나는 먹구름 안에서 해매지 않아도 됩니다. 잠시 먹구름을 내 옆으로 내 손 안으로 움직여서 한번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한발자국 멀리서 이야기해 보세요. “나는 슬프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내가 슬픔이 아니고 슬픔이 내가 아니고, 내 안에 슬픔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지요).
“나도 충분히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지. 다행히도 나의 슬픈마음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구나”
(정상적이고 타당한 감정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슬픈마음을 나와 조금 분리시키고, 우리가 그 감정을 마주 볼 준비를 한 다음에는 이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나를 어떻게 작동시키는지를 이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좀 더 객관적리고 효율적인 다음 스텝을 (행동/솔루션/생각) 취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인식’을 하는 연습은 아래와 같은 질문들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무슨 상황/대상으로 인해 내가 슬픔을 느끼는가? (트리거/계기, 예: 이별)
나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인식/인지, 예: “나는 앞으로 사랑받지 못할거야”)
나의 몸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신체반응, 예: “가슴이 조여오는 느낌”)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행동, 예: “아무연락도 받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는다”)